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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세에 백수가 된다는 것

 

 

 

백수생활 2달이 다 되어간다.

누구도 눈치를 주는 건 아니지만, 불안하다.

가끔 정신차려보면 이러고 있어도 되는 건지 싶다.

 

 

처음 퇴사하고 한 2주 동안은 집을 미친 듯 청소했다.

청소하는 동안은 잡념이 사라지고, 그래도 하루 중 뭔가 했다는 뿌듯함이 있어서

가구도 막 옮기고, 청소용품을 사다가 쓸고 닦고 정말 아침부터 밤까지 청소하고

밤에도 몸이 힘들어서 푹 잤다.

 

지금은 낮도, 밤도 없다. 나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나 자고 싶을 때 잔다.

 

 

취업할 나이에 취업이 되지 않는 모든 연령이 다 불안하겠지만,

사실은 30대의 백수는 정말 하루 종일 좌불안석 심장을 떨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돈 많고, 시간도 많은데...

그만두기 전에 해보고 싶다고 적어놓았던 버킷리스트들은 이미 포기한지 오래다.

 

 

'이러다가 취업 시기를 놓치면 어쩌나...'

'그렇다고 아무데나 들어 갈수도 없는데...'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 그런 게 있기는 한가?'

‘뭐라도 해야 하는데, 예전 같지 않은 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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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을 하고 있거나, 텔레비전을 보고 있거나...

하루 종일 쓸 데 없는 일을 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남은 시간의 99%는 인생을 비관하고, 미래를 걱정하는 시간으로 허비하고

남은 1%는 그냥 내 처지에 대한 합리화와 조금의 긍정을 하며 보낸다.

 

이 1%라도 없었다면 정말 우울함과 찌질함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어딘지 모를 근자감이랄까?

그래도 밤이 되고 혼자 있는 시간에 센티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건가보다.

 

 

벌써 10년도 더된 수능 전날이 생각난다.

그날도 차라리 쉬려면 푹 쉬던지, 최종적으로 했던 것을 점검하며 공부를 해야 하는데

텔레비전과 함께 있었다.

즐겁게 보고 있지도 못했다.

몸의 반은 텔레비전 쪽에 내고, 나머지 반은 공부방에 넣고 왔다갔다 하며 텔레비전을 보았다.

 

평소엔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텔레비전이 광고나 홈쇼핑까지도 어찌나 재미있던지...

결국 애국가를 보고나서야 겨우겨우 얕은 잠이 들었다.

몸은 피곤했고, 불안한 맘에 스트레스만 받았다.

 

지금도 그런 비슷한 불안함을 느끼고 있다.

제대로 쉬지도, 놀지도, 공부하지도, 일하지도 않는 불안감...

 

31세에 수능 전날의 기분을 느낀다는 것은

수능이나 직장이나 인생의 큰 관문이기 때문이 아닐까?

 

지금이 아니면 앞으로 푹 쉴 수 있는 기회가 언제 주어질지 모르는데,

어린 나이도 아닌 내가 다음 직장도 또 어설피 갈 수 없으니,

준비는 단단히 하긴 해야 하는데

놀고도 싶고, 취업준비도 해야 할 것 같고...

수능 때 텔레비전도 보고 싶고, 공부도 해야 할 것 같은 걱정과 같은 맥락이 아닌가 싶다.

차라리 쉬려면 푹이라도 쉬지 걱정은 왜하는지.

 

 

역시 인간은 같은 실수를 늘 반복하는 건가보다.

그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이 일기를 쓰고 있긴 하지만 또 걱정을 하겠지...

그래도 조금 해방된 기분은 든다.

내일부턴 조금 더 활기찬 하루를 보내봐야겠다.

 

그러려면 우선 포기했던 버킷리스트들을 다시 작성하고,

텔레비전 보고 핸드폰 하는 시간부터 줄여야겠다.

놀더라도 활기차게 경험이 쌓이게 놀아야겠다.

 

계획표라도 세우고 자봐야겠다.